동주 장르 : 드라마 개봉 : 2016 .02.17. 감독 : 이준익 출연 : 강하늘(윤동주), 박정민(송몽규), 김인우(고등형사) |
윤동주의 삶은, 그리고 그의 시는 끊임없는 부끄러움에 대한 표현과 자아 성찰의 연속이었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눈으로 보기엔, 그 엄혹한 시대 그렇게 산 것도 참 대단하고 대견한데 그는 그랬습니다. 부끄러워하고 또 부끄러워하고, 또 부끄러워했습니다.
윤동주와 그의 절친이자 또 다른 자아였던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짧았던 삶과 서글펐던 죽음을 그린 영화 '동주'(감독 이준익, 2016년)는 왜 윤동주가 그토록 부끄러워했고 스스로를 성찰해야 했는지 담담한 흑백 화면 속에 담아냈습니다.
윤동주와 그의 동갑내기 이종사촌이자 죽마고우였던 송몽규. 영화 속 윤동주와 송몽규는 마치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관계처럼 묘사됩니다. 그저 문학이 좋고, 시를 쓰는 게 좋았던 동주. 그의 성격은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내성적이고 조용했습니다. 그에 반해 몽규는 시원시원한 성격에 리더십이 있었고, 은진중학교 3학년 시절 당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동아일보 신촌문예 콩트 부문에 '술가락'이라는 산문으로 당선될 정도의 재능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문학보다 현실 참여가 더 중요했습니다.. 일제 강점기라는 답답한 현실을 뒤엎을 혁명과 독립, 무장투쟁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현실 참여를 중시하는 문학잡지를 만들고, 단체를 결성하고, 참여함으로써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쩌면, 윤동주의 끊임없는 자아성찰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던 송몽규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마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같은 관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준익 감독은 송몽규가 윤동주의 감춰진 또 다른 자아, 곧 윤동주가 억누르고 살아왔던 또 다른 모습인 것처럼 그려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지금 같은 시대에 시나 쓴다고, 문학이나 한다고 살아왔던 자신의 삶이 부끄러워서 자술서에 서명하지 못하겠다며 울부짖는 윤동주의 모습은 엄혹했던 시대를 보여주는 극명한 모습이자, 억눌렸던 그의 자아가 폭발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윤동주와 송몽규, 두 젊음의 삶을 통해 이준익 감독은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말을 걸고, 위로를 건네고 있습니다. 동주와 몽규와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젊음은 나라와 주권도 잃고, 언어도 잃고, 주체적인 삶도 잃고 살아갑니다. 공부를 하는 것도, 시를 쓰고 문학을 논하는 것도, 연애를 하는 것도 사치인 시대였습니다. 친형제보다 더 절친했던 두 사람은 그 시대 문학의 역할을 놓고 논쟁을 벌입니다. 진정성을 담은 언어로 만들어지는 문학과 시, 그 자체로 사람들의 마음과 시대에 영향을 미친다는 동주와 현실을 담지 못하고,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문학이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하는 몽규. 둘의 논쟁의 원인도 결국 다 시대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합니다. 나라도 있고, 우리말도 맘껏 쓸 수 있는데, 연애도, 취미생활도 사치로 여겨지는 시대. 돈 되는 일, 취직을 위해 필요한 일이 아니면 모조리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풍토. 이 팍팍한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 대한 연민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신념에 따라 치열하게 살았던 두 사람을 통해 이준익 감독은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입니다. 윤동주의 시가 결국 한 권의 시집으로 출간되고, 그의 주장처럼 진심이 담긴 절절한 언어로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말을 걸고, 우리 마음을 요동치게 만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영화 '동주'는 이준익 감독이 스스로의 결심을 되뇌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왕의 남자', '황산벌', '사도' 같은 흥행작을 연달아 내놓은 흥행 감독이지만, 젊은이들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지 못하는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한가하게 흥행 타령이나 했던 자신에 대한 성찰. 결국 윤동주처럼 진심이 담긴 작품을 했을 때 후대에 사람들이 길이길이 그를 기억하고, 그의 작품을 노래할 것이라는 그 결심 말입니다. 제작비 걱정 없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영향력 있는 감독이지만 단돈 5억 원이라는 제작비로, 이른바 A급 스타 하나 출연하지 않는 흑백 영화 '동주'를 600만 관객의 발길을 모았던 영화 '사도'의 후속작으로 선택한 것입니다.(주연을 맡은 강하늘, 박정민이 지금은 훌륭한 배우이지만, 당시에는 떠오르는 스타 정도였다고 라고 생각해하는 말입니다.)
윤동주의 성찰, 그의 노래는 결국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걸으라고 속삭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이후에도 영원히 존재할 테니 말입니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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