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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TV 리뷰

우리들의 학원 액션 로망, 말죽거리 잔혹사

by 한국의 잡학사전 2022.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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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죽거리 잔혹사
 장르 : 드라마, 액션, 멜로/로맨스
 개봉 :
2004 .01.16.

 감독 : 유하
 출연 : 권상우(현수), 이정진(우식), 한가인(은주)

옥상으로 따라와, XXX.”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남학생이라면, 아마도 상당수가 학교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소위 학교 짱에게 마음속으로 이 소리를 한 번쯤 외쳐 봤을 것입니다. 남자들의 로망 중 하나였을까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현수(권상우 분)가 외친 이 한 마디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남성들에게 커다란 대리만족을 안겨줬을 것입니다.

1970년대 말 개발이 한창이던 강남 말죽거리의 한 사립학교에 전학 온 현수는 말 그대로 모범생이었습니다. 공부도 제법 하고 아버지와 선생님의 말씀은 현수에게 곧 법과 다름없었습니다. 맘에 드는 여자가 있지만 친한 친구에게 뺏기면서도 좋아한다는 말을 꺼내기조차 힘든 전형적인 모범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사회와 학교는 착하디 착한 소년 현수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혹자의 표현처럼 그를 괴물로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감독 유하가 그려내는 학교는 군부가 지배하던 당시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었습니다. 그 세계는 비정상적인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입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그랬듯, 학교도 하나의 병영사회였습니다. 교사가 학생을 때리고, 학생이 학생을 때리고, 심지어 교장이 교사를 폭행하는 것조차 허용되는 사회. 하지만 그 사회를 지배하던 군부의 일원, 장군님의 자제가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아에게 두들겨 맞는 것은 결코 허용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을 방치한, 혹은 막지 못한 교사는 그 순간 무능력한 교사가 되고 맙니다.

학교의 질서는 폭력의 논리로 유지됩니다. 군인 출신인 교련 선생이 직접 또는 학생들 중 선발한 선도부를 통해 학생들의 군기를 잡습니다. 이처럼 폭력이 지배하는 학교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절대 다수는 그저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갈 것이며, 그 중 영악한 소수는 지배자들에게 유착해 콩고물을 얻어먹으며 편안한 삶을 영위할 것입니다. 여기에 적응하지 못한 일부만이 부적응자로 낙인찍힌 채 학교를, 주류 사회라 불리는 곳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모범생 현수의 주변 인물들도 그랬습니다. ‘장군의 아들을 폭행한 문제아 찍새와 선도부와 대립한 우식은 학교를 떠났고, 절친 햄버거는 선도부의 앞잡이가 됐습니다. 다수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사랑했던 은주마저 우식과 떠나버리고, 현수는 괴물이 됐습니다. 옥상에서 선도부 4명을 한꺼번에 때려눕힌 현수는 외칩니다.

대한민국 학교 X 까라 그래!!!”

여느 학원 활극이었다면 현수는 학교의 영웅이 됐을 것입니다. 흐트러졌던 학교의 질서는 바로 잡히고, 학교에는 희망이 넘쳐난다라는 스토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선도부를 무찌른 현수는 영웅이 아닌 깡패, 불량배가 된 채 학교에서 쫓겨납니다. 무언가 잘못된 한국의 교육 현실은 한 명의 히어로가 바꿀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현수가 학교를 뛰쳐나온 지 40여 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한국 사회는 당시와 같은 병영 사회와 많이 달라졌습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학생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됐습니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 학교에는 여전히 폭력의 유령이 어슬렁거립니다. 학생들을 지도의 대상으로만 보는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교육관료들과 교사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여전히 한국사회의 금과옥조는 무한경쟁과 약육강식, 승자독식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경쟁으로 내몰리고, 공동체와 배려 같은 가치들은 내가 친구들을 짓밟고 성공한 다음에 고민해야 할 것들이라고 합니다. 감독 유하가 그렸던 것처럼 학교는 한국사회의 축소판입니다. 경쟁과 생존이 최고의 가치인 세상에서 학교라고 어쩔 수 있을까 하겠지만, ‘말죽거리 잔혹사의 시대와는 달라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쉽게 교육개혁을 이야기합니다. 입시제도를 바꾸고, 교육제도 몇 가지를 손질하면 교육개혁이 바로 이뤄질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교육개혁은 영화 속 정의의 영웅들이 몇몇 악당을 무찌르고 이뤄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교육개혁은 민주사회의 발전과 발걸음을 같이 해야합니다. 경쟁이 전부가 아닌, 공동체를 복원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가 선행될 때 교육개혁학교의 변화도 함께 이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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