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전 사고 이야기
영화 ‘판도라’(감독 박정우, 2016년)는 어찌 보면 재난 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답습한 평범한 영화입니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은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에서 알콩달콩, 지지고 볶으며 일상의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을에는 무엇인지 모를 위험이 존재하고 있고, 극히 일부의 선각자들(혹은 외톨이 전문가들)은 위험요소에 대해 경고하지만 정부와 사람들은 경고를 무시합니다. 그런 사이 알게 모르게 사고가 터지고 그 사고는 엄청난 재난과 재앙을 불러 옵니다. 재난 속에서는 갖가지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들이 진행됩니다. 혼란스러운 사람들, 그 가운데 크고 작은 갈등들, 무능하고 우왕좌왕하는 정부, 사람들이 죽건말건 자기의 이익을 챙기기 급급한 인물들이 연달아 등장합니다. 그리고 아무 권력도, 큰 이익도 없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다른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그리고 결국 재난의 끝에서 자신을 산화하고 희생하며 다른 사람들을 구해내는 이들의 이야기로 영화는 감동적으로 마무리 됩니다. ‘판도라’는 이 공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거기에 가족애와 절절한 신파적 요소까지 가미돼 있으니, 어디서 많이 봤던 영화를 또 봤구나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영화 자체로만 보면 약간은 거칠고 빤한 킬링타임용 재난 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애매한 영화가 될 뻔했습니다.
2. 영화의 키포인트
2011년 일본에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 ‘판도라’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는 영화 자체의 힘이 아니라 당시 한국 사회의 현실이었습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 하루가 다르게 펼쳐지고 있는 시국 속에서, 웬만한 스토리로는 관객들의 눈길조차 받긴 힘든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사회의 기막힌 현실이 영화에 커다란 힘을 불어 넣어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40년이란 시간동안 가동되며 노후화 될 대로 된 원전을 계속해서 가동시키기 위해 이른바 원전 마피아 집단과 정부는 이미 한 몸이 돼 있고, 원전이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라는 선전에 국민들은 속아 넘어간 상태였습니다. 원전 관리의 책임자인 신임 본부장은 원전 작동의 기본도 모르는 문외한이고, 대한민국이, 국민이 위기 상황을 맞았을 때 그 상황을 해결할 책임이 있는 대한민국호의 선장 대통령은 인(人)의 장막에 갇힌 채 제대로 된 보고하나 제대로 받지 못하는 무능력한 사람입니다. 강도 6이 넘는 강진이 발생하고, 원자력 발전소 한별 1호기에 최초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언론과 주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적극적으로 대처했으면 사고가 커지지 않았겠지만, 정부 내 기득권 세력과 원전 마피아들은 더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사건을 은폐하고 국민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합니다. 결국 원전이 폭발하고, 대한민국 자체가 공멸할 수 있는 위기 상황에 처합니다. 영화가 이처럼 커다란 관심을 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탈핵시대’를 역행하려고 했던 대한민국의 현실이었습니다. 한때 원자력 발전은그자체로 축복이라고 불렸을 때가 있었습니다. 안전하고 깨끗하고, 영원히 불타는 에너지라니.
프로메테우스가 신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전한 이후 인간의 기술로 정말 완벽한 ‘불’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의 축복은 판도라의 저주를 가져왔으니.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축복이라 여겼던 원자력이 인간에게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했습니다.
3.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독일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들은 앞 다퉈 탈핵 선언을 했고, 더 나은 친환경 에너지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가장 오래된 원자력 발전소인 고리 1호기의 폐쇄를 결정하기는 했지만, 신고리 3호기 가동을 시작하는 등 오히려 원자력발전소를 늘여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원전보유 개수 세계 6위, 밀집도 1위를 자랑하는 한국의 원전은 울산, 부산, 창원, 경주 등 수백만 명의 인구가 사는 대도시 인근에 밀집돼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사고가 우리나라에서 발생했을 경우 그 피해는 상상조차하기 싫을 정도입니다. 더구나 한국도 지진 자유 지대가 아님은 이미 그동안 발생한 지진을 통해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영화 ‘판도라’는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시뮬레이션 해주고 있습니다. 원전 사고가 생길 때 한국이 어떤 혼란에 빠질지 상상할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원자력 발전은 전문가들만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들 소수의 이익을 위해 전국민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을 막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국민이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어야합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 원전사고는 발생하면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현재도 복구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판도라’는 원전 사고라는 절망의 판도라 상자가 열리기 전에 희망을 이야기하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경제적 이익보다 중요한 것이 국민의 생명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꼭 필요합니다. 지금도 운동장을 뛰놀고,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을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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