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쁜 나라 이야기
우리가 국가에 세금을 내고, 국방의 의무를 지며, 애국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국가가 국민을 위해 해야 할 의무는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대해 아마도 사람에 따라, 학자에 따라 각기 다른 답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대단한 학문적 이론을 공부하지 않아도, 국민이라면, 시민이라면 모두 동의하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민의 위임을 받아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정부’는 이러한 기본적인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아마도 의무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지식일 것입니다.
그 기본적인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나라는 분명 ‘나쁜 나라’입니다. 일명 '이명박근혜' 시대의 대한민국은 참 나쁜 나라였습니다. ‘만나면 좋은 친구’라는 공영방송 MBC에서 정권을 제대로 견제하고 올바로 비판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프로듀서 최승호가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은 우리가 얼마나 ‘나쁜 나라’에 살고 있는지 절감하게 합니다. 최 피디는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아닌 일개 정권의 이익을 보호하고 한 줌의 기득권 세력을 이롭게 하기 위해 국가의 폭력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그 보기 싫고 불편한 진실을 언론인의 사명감으로 묵묵히 추적하여 밝혀냅니다.
2. 영화 '자백'의 주내용
영화 ‘자백’은 1960~1970년대 군사독재정권 치하가 아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벌어진 간첩조작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으로 알려진 화교 출신 탈북자 유우성 씨 간첩조작 사건이 영화의 주내용입니다. 당시 국정원과 검찰이 유 씨의 간첩 혐의를 확신하는 가장 큰 증거는 유 씨의 여동생 유가려 씨의 ‘자백’입니다. 2004년 먼저 탈북한 오빠 유우성 씨의 도움을 받아 2012년 탈북해 입국한 유가려 씨는 국정원중앙합동신문센터(이하 합신센터)에서 조사를 받던 도중 오빠가 북한의 간첩이라고 자백합니다. 그러나 그 자백은 감금, 고문과 폭행, 회유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유 씨는 오빠를 구하기 위해서는 이 자백이 사실이라고 법정에서 말해야 한다는 국정원의 회유에 넘어가 법원에서 거짓 증언을 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최승호 피디를 비롯한 국내 몇몇 언론들은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해 한국과 중국을 넘나들며 집요하게 취재에 나섭니다. 민변의 변호사들과 일부 언론의 도움으로 결국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나온 증거들이 모두 조작된 것임이 드러나고 유 씨는 법원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습니다. 그러나 동생 가려 씨는 한국에서 추방됩니다.
국정원은 간첩사건 조작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언론과 또 다른 공권력조차 접근할 수 없는 합신센터라는 ‘성역’에서 감금과 폭행이 행해지고, 중국의 공문서마저 위조합니다. 검찰은 국정원이 증거라며 내민 서류가 위조됐는지 여부를 확인조차 하지 않고 법정에 증거로 제출하고, 검찰이 제시한 증거가 위조된 가짜임이 밝혀져도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습니다. 국정원이 간첩 사건을 조작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국가와 국민이 아닌 정권과 권력, 기득권에, 충성하기 때문입니다. 정권이 잘못된 정책과 비리사건으로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국정원은 간첩사건을 들고 나와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듭니다. 한 바탕 휘몰아치는 ‘북풍(北風)’은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고, 여기에 토를 다는 언론과 국민은 한순간 ‘빨갱이’로 몰립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시도한 수많은 간첩 조작 사건 역시 전혀 ‘창조적’이지 않습니다. 박정희 독재 정권이 정권 유지를 위해 수없이 만들었던 시국사건, 간첩사건과 판박입니다. 박정희 독재정권에서 각종 간첩조작 사건을 만든 공안 검사로 유명했던 김기춘 같은 인물이 했던 ‘그 짓’을 지금의 국정원이 똑같이 복제하고 있습니다.(1975년의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해 묻는 최승호 피디의 질문에 비웃음으로 답하는 김기춘 부부의 모습은 ‘나쁜 나라’ 대한민국의 초상입니다.)
영화는 1975년 재일교포 간첩조작 사건을 조명하며 부끄러운 역사가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박정희 독재정권은 재일 한국인을, 이명박근혜 정권은 탈북자를,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 없는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들을 간첩으로 몰고 정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썼음을 증명합니다. 최종적으로 재일교포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들은 재심을 통해 명예를 회복하였습니다. 일본에 살고 있는 그 사건의 피해자 김승효 씨는 중앙정보부의 모진 고문으로 평생 장애를 안고 살고 있습니다. 당시 ‘그 사건’에 대해 한 번도 얘기한 적 없다는 김승효 씨는 최승호 피디의 카메라를 향해 무죄라고 외치며 말합니다. “대한민국은 나쁜 나라”라고 말입니다.(김승효 씨는 서울대 경영학과 재학 중인 1974년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끝에 간첩이라고 자백하고 징역 12년에 자격 정지 12형을 선고받았으나 2018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지난 2020년 12월 일본 자택에서 별세하셨습니다.)
3. 좋은 나라 이야기
우리는 이 ‘나쁜 나라’를 다시 사람들이 살만한 나라로 만들어 냈습니다. 아니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로 만들고 있습니다. 국가가, 정부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기본을 하는 나라, 국정원이, 검찰이, 국가의 권력이 국민을 위해 올바로 쓰이는 나라. 단순히 국정을 농단한 몇 명을 벌주는 것이 목적이 아닌 ‘나쁜 나라’ 대한민국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도록 노력해왔습니다. 위기를 극복하고 '좋은 나라'로 만든 이 나라가 변하지 않도록 국민이, 시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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