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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TV 리뷰

인간을 꿈꾸는 로봇, '바이센테니얼 맨'

by 한국의 잡학사전 2022.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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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센테니얼 맨 Bicentennial Man, 1999
 장르 : SF, 드라마
 개봉일 : 2000.01.29.
 감독 : 크리스 콜럼버스
 출연 : 로빈 윌리엄스(앤드류 마틴)

1.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

인류에게 충격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체스나 장기 같이 비교적 말의 움직임 같은 부분이 단순한 게임이라면, 인간이 질 수도 있지 싶었습니다. 그러나 바둑이라면, 더구나 현존하는 바둑 기사 중 가장 창의적인 기사로 일컬어지는 이세돌이라면 슈퍼컴퓨터급 인공지능을 자랑하는 알파고라도 인간이 간단하게 이길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5번의 격돌에서 단 한 번의 승리에 환호할 만큼, 이세돌 9단이 이것은 이세돌의 패배일 뿐, 인간이 패한 것이 아니다라고 선언할 정도로 충격적인 패배였습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바둑 대결의 결과를 보며 인류는 이내 다시 한번 두려움에 빠져들었습니다.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들이 대체할 수많은 인간의 일자리들, 내 자리는 과연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까 또는 인공지능의 발전은 어디까지 향할 것이며, 결국 인간을 뛰어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운 상상 말입니다.

영화는 인간들의 이러한 두려움을 상업적으로 가장 잘 이용하고 있는 문화 장르입니다. 영화가 표현하고 있는 인공지능, 혹은 로봇과 관련된 미래는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일을 로봇이 대체함으로써 이뤄지는 행복한 유토피아보다는 암울하고 음울한 디스토피아일 때가 많습니다. 인간을 위협하는 것을 넘어 인간 세계를 지배하는 인공지능과 맞서 싸우는 전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터미네이터 시리즈나 ‘매트릭스 시리즈는 아마도 대표적인 작품들일 것입니다. ‘블레이드 러너’, ‘공각기동대’, ‘아이, 로봇 등 인공지능, 로봇에 관련된 영화들의 톤은 분명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2.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

그러나 1999년 개봉된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은 인공지능, 로봇을 다룬 여타 영화들과 무언가 다른 색채를 띠고 있습니다. ‘나 홀로 집에’, ‘미세스 다웃 파이어등 가족 코미디 영화에 장점을 보여 온 감독답게 좀 더 따뜻한 톤으로 인공지능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리처드는 가족들을 놀라게 할 깜짝 선물로 로보틱스 사의 2005년 모델 가정부 로봇을 사옵니다. 앤드류(이 이름조차 사람과 비슷한 로봇을 뜻하는 안드로이드로부터 유래했습니다)로 불리게 된 이 로봇은 제작 과정에서 계기판에 마요네즈 한 방울이 떨어지며 다른 로봇과는 뭔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예를 들면, 로봇치고는 생각하는 모습을 보인다든지. 앤드류를 괴롭히는 큰딸에게 리처드가 앤드류는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야. 앞으로 함부로 대할 생각 말라는 말에 앤드류는 더욱 각성하고 이후 사고하고, 판단하고, 학습하며 점점 인간과 흡사한 모습이 되어 갑니다. 결국 앤드류는 인간을 사랑하게 되고 겉과 속이 모두 인간이 되기를 소원하며 동분서주합니다.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은 앤드류를 통해 인간성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자존감을 가지고 학습하고, 자유를 꿈꾸고, 다른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앤드류가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은 곧 인간, 인간 사회의 진화와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무수한 편견과 법, 제도라는 벽과 마주칩니다. 마치 흑인과 여성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처럼. 피부색이, 인종이, 성별이, 성적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과연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 인간의 권리를 누리는 것과 누리지 못하는 것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은 결국 인간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역설합니다. 로봇은 합리적이고, 단점도 없고, 무한할 수 있습니다. 사고 체계와 창의력을 갖게 된 앤드류가 시계 만드는 일을 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합니다. 앤드류의 인공지능은 인간과 달리 유한하지 않고 영원합니다. 그러나 영원함은 인간성을 지니게 된 앤드류에게 너무 큰 비극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차례차례 떠나보내며 홀로 남겨지게 되니까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을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니까요.

인공지능과 달리 인간은 모순덩어리이고, 수없이 실수하며, 한정된 기간만을 삽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족함이 곧 인간이며, 이러한 인간성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결국 영원한 로봇이 아닌 유한한 인간의 삶을 선택하는 앤드류의 모습을 통해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3. 사람이 희망

어쩌면, “이세돌의 패배이지, 인간의 패배가 아니다라는 이세돌의 말속에는 이러한 함의들이 담겨있는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의 발전이 우리 인간에게 어떤 미래를 선사할지 알 수 없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선사할 수도, 최악의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인간의 모습, 실수투성이인 사람 그 자체로 사랑스럽고, 희망을 꿈꿀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인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결국, 미래가 아무리 두렵더라도, 사람이 가능성이고, 사람이 희망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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