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반공영화 제작 시절
남과 북의 대립과 갈등, 긴장 관계는 한국 영화의 든든한 자양분이었습니다. 1960-1970년대 국가 주도로 만들어진 반공영화부터가 시작이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외국영화 수입쿼터를 빌미로 한국 영화사들에게 반공영화 제작을 강제하기도 했습니다. 남한 체제의 우수성을 선전하는데 영화만큼 좋은 소재가 흔치 않았다는 반증입니다. 임권택 같은 거장도 영화감독으로 ‘살아남기’ 위하여 반공영화를 찍어야만 했습니다. 정말 가뭄에 콩 나듯이 양산되는 반공영화 속에서도 수작들이 탄생하기도 했고, 앞서 언급한 임권택 감독처럼 반공영화 제작을 하나의 영화 수업으로 삼으며 성장한 일군의 감독들이 있기도 했지만, 체재 선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낮은 수준의 반공영화들이 만들어진 시기였습니다. 어쩌면 의무감으로, 또는 엄혹했던 1980년대 시대에 대한 저항 정신으로 영화의 장면 장면마다 의미를 숨겨가며, 은유하며 남북문제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던 시대가 지나고 비로소 남북 관계를 다룬 영화가 ‘돈이 되는’ 때가 왔습니다.
2. 본격적인 흥행 영화
그 시작은 ‘쉬리’였습니다. 남과 북의 스파이 간에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고전적인 스토리 영화입니다. 할리우드 스타일로 세련되게 디자인된 액션 등 강제규 감독의 실험은 대성공하며 ‘쉬리’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1999년 ‘쉬리’,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 등의 제작과 흥행은 민주정부 수립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좀 더 자유롭게 바뀐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영화 속 북한에 대한 시선도 자연스럽게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이후 북파공작원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실미도’(2003년), 6.25 전쟁을 소재로 한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가 연속으로 천만 관객 동원이라는 신화를 썼고, 6.25를 또 다른 시선으로 재해석한 ‘웰컴 투 동막골’(2005년)까지 대흥행하며 남북 관계를 다룬 영화는 하나의 성공 공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남과 북, 신냉전 시대가 옵니다. 연이은 두 민주정권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며 한반도에 봄이 오나 기대하게 됐으나, 그 기대가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처럼 남북 관계가 급속하게 얼어붙습니다. 그래도 남과 북을 소재로 한 영화는 꾸준히 만들어졌습니다. 그 와중에 1960년대를 연상시키는 코미디 같은 시도가 자행되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 사건, 북한을 적으로 규정한 일차원적인 반공 영화 제작을 정부가 지원했고, 이를 의심케하는 수준의 영화 몇 편이 제작돼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정부가 영화 시장에 개입하는 것의 한계는 분명했습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영화가 한 편도 없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2010년 제작된 ‘의형제’를 시작으로 ‘용의자’, ‘베를린’,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비롯해서 최근 제작된 ‘공조’, ‘강철비’, ‘백두산’에 이르기까지 북한 특수부대 요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들이 하나의 장르처럼 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영화들은 액션 스릴러 장르 영화로서의 재미도 뛰어나지만 영화 속 남북 관계의 고찰에 있어서도 깊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강철비’ 같은 경우는 전쟁 위기에서 극적인 화해와 관계 진전이라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예언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듣기도 했습니다. ‘베를린’ 등의 영화에서는 북한 내 기득권 세력에 의해 희생되는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예전 북한을 적 또는 동포로 바라보는 일차원적인 시선을 벗어나 북한 내부의 복잡한 상황에 대해 입체적인 이해를 하려 했다는 시도 자체가 신선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모가디슈’, ‘강철비2-정상회담’ 등이 제작되어 관객들과 만났습니다.
3. 앞으로의 영화
남북 관계를 다룬 영화들은 해방과 전쟁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와 발을 맞추며 만들어져 왔습니다. 때로는 현재의 상황을 앞서 크고 작은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에 대한 우리의 시선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미쳐온 것은 사실입니다. 이제 더 많은 변화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영화보다 더 재밌는 현실에 영화 관계자들은 긴장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변화하는 남북 관계를 지켜보며 상상력을 발휘하다 보면 더욱 멋진 영화들이 탄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립과 반목의 시대를 넘어 우리 민족이 바라는 바가 이뤄진다면 영화 소재의 제한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마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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