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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TV 리뷰

황동혁 감독의 영화 '남한산성' 속 병자호란, 반면교사로 삼아야

by 한국의 잡학사전 2022.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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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감독 황동혁
출연 이병헌(최명길), 김윤석(김상헌), 박해일(인조)
개봉일 2017.10.03.

1. 병자호란을 다룬 영화

영화 남한산성’(감독 황동혁, 2017)은 보는 내내 답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한 영화입니다. 당시 영화를 보고 나왔던 관객들의 표정은 커다란 고구마 서너 개를 물이나 동치미 없이 꾸역꾸역 먹은듯한 딱 그 모양새였습니다. 또한 영화 중간중간 객석에서는 탄식과 한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15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제작비, 이병헌과 김윤석의 무시무시한 연기 대결과 도가니’, ‘수상한 그녀등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이 만든 웰 메이드 정통 사극 등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남한산성이 385385만 명의 관객으로 손익분기점(영화의 손익분기점은 500만 명 정도였다고 합니다)도 못 넘을 정도로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이 답답함에 기인할지도 모릅니다.

똑같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했지만, 영화 최종병기 활남한산성은 그 결을 완전히 달리합니다. 영화 ‘최종병기 이 이유도 모르고 당할 수밖에 없었던 민초, 백성들의 시선에서 전쟁을 바라본다면 남한산성은 전쟁의 원인인 임금과 그 주변 인물들에 철저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영화의 공간 또한 남한산성과 그 주변으로 한정돼 있습니다. 전란을 피해 도망치다 목적지였던 강화도로 가지 못하고 남한산성에 갇혀버린 임금과 조정, 그 고립감은 영화를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장치입니다. 굴욕은 잠깐이지만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 역)과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렇게 살아남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는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 역)의 논쟁 또한 어쩌면 보는 내내 슬프기도 합니다.

2.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는

역사가 이미 스포일러이기도 하지만, 당시 우리의 선택지라는 게 그것밖에 없다는 사실 자체가 그렇습니다. 어떻게든 싸워서 난국을 타개하려는 김상헌의 노력은 가상하지만 이미 압도적인 전력 차를 보이는 두 나라의 전쟁에서 그런 고민은 의미 없는 일입니다. 심정적으로는 강직하고 포기하지 않는, 그런 인물에게 마음이 갈지언정 현실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최명길의 선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살기 위해, 오로지 생존을 위해 강대국의 요구를 속절없이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 머리로는 그 선택이 옳음을 알지만 마음속까지 다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둘의 논쟁을 지켜보는 것도 괴로운데, 기회주의자 신하들과 그들의 말에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다 최악의 선택을 반복하는 인조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또 어떠합니까. 사실, 삼전도에서 인조가 무릎을 꿇고 청나라의 황제에게 세 번 절하며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건 말건, 굴욕을 당했던 말건 중요할 것은 없습니다.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의 성격이 임진왜란을 비롯한 이전의 전쟁들과 성격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위정자들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던 전쟁, 국제 정세에 대한 무지함과 사대가 아닌 사대주의가 낳은 전쟁, 병자호란은 스스로 자초한 치욕스러운 전쟁입니다. 신하들에 의해 세워진 임금, 그 리더가 임진왜란 때 우리를 도왔던 명나라에 의리를 다 해야 한다며 명분만 찾던 신하들에게 휘둘려 중심을 잡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결과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토록 무능했던 정치인들 때문에 벌어진 전쟁으로 인한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무려 50만 명이 넘는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고, 수만 명의 병사와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3. 대한민국의 외교

그리고 현재, 여전히 대한민국은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고, 남북한은 휴전 상태입니다. 우리나라는 무엇보다 외교가 중요하며, 국제 정세에 대한 밝은 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작금의 정치 세력들을 보고 있자면 1636년의 답답하던 현실이 떠오릅니다. 미국은 절대적이며, 6.25 당시 도와줬던 은혜를 잊으면 안 되며 그들이 오로지 선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와 데칼코마니를 보는 듯합니다. 오직 미국만 바라보며 다른 국가와의 외교적 교류를 무시한 채 한반도를 국제적 왕따로 만드는 아주 위험한 상황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외교는 미국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도를 줄이고 주변 국가와의 안정적인 교류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주권자, 국민들이 달라져야 합니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소리쳐야 합니다. 사실 외교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국익과 국민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이 핵심을 바탕으로 우리 학생들에게 세계를 보는 눈을 더 다채롭고 균형 있게, 입체적으로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초한 전쟁, 병자호란의 굴욕과 아픔이 반면교사가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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