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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TV 리뷰

기생충 속 '카스테라'를 통해 본 국가의 역할

by 한국의 잡학사전 2022.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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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기생충 속 카스테라 이야기

의외로 모든 사건의 시작은 ‘카스테라’(사실 정식 명칭은 카스텔라이다)때문이었습니다. 향긋하고 달콤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카스테라.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고, 냄새는 지독했습니다.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2019년)은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상업 영화로서도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영화의 구조는 생각보다 단순하지만, 영화의 디테일을 살리는데 최고 전문가로 불리는 ‘봉테일’ 봉준호 감독이 영화 곳곳에 복선과 상징과 은유를 심어 놓은 탓에 한 영화를 수 차례 보는 N차 관람까지 유행했습니다. 관객들은 영화를 다시 보면 처음 볼 때 놓쳤던 요소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가 담고 있는 많은 의미들에 대한 기사와 글들 또한 쏟아져 나왔습니다. 영화 대사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의미, 영화의 장면들(미장센)이 내포한 상징성, 등장인물들이 대표하는 시대성 같은 것들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 듯싶습니다. 문득 영화에 대한 많은 이야기 중 유독 ‘카스테라’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봉테일이라 불리며 영화 현장에서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며 꼼꼼하기로 유명한 봉준호 감독이 두 번이나 반복한 대사 ‘대만 카스테라.’ 그가 이 대사를 반복한 이유가 그냥 우연에 불과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 두 명의 남자, 기택(송강호 역)과 근세(박명훈 역)의 공통점은 대만 카스테라 가게를 하다 망했다는 점입니다. 기택은 은퇴한 중년 세대의 인기 아이템 치킨집과 대만 카스테라 가게를 운영하면서 은행 빚 또는 제3 금융권 정도의 빚만 끌어다 쓴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반지하에 살았던 것이지만, 근세는 사채까지 끌어다 썼습니다. 그 차이와 대가는 매우 컸습니다. 그는 햇빛을 맘껏 보면서 살 수 있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조차 박탈당했습니다. 그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박사장(이선균)에게 존경(Respect!!)을 표하고, 그의 가족에게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받아먹으며, 계획과 꿈도 없이 사는 것에 아무런 불만도 없습니다. 그게 그들에게 최선의 삶일지도 모릅니다. 바퀴벌레처럼, 혹은 꼽등이처럼, 하다못해 기생충같이.

2. 왜 대만 카스테라였을까?

왜 대만 카스테라를 말했을까요. 몰락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 중산층의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현기증이 느껴졌습니다. 기택이 처음부터 반지하의 삶을 살았을까요? 아닙니다. 기택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최소한 중산층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번듯한 직장을 다니다 명예퇴직을 했거나, 아니면 부모에게 먹고 살만큼 얼마 정도의 유산을 물려받아 자영업 정도는 할 수 있는 정도의 삶을 가지고 있을 전형적인 중년 아저씨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했던 사업들이 모두 망하며 지금의 상태가 된 것입니다. 치킨 집은 은퇴한 회사원들이 찾는 최후의 보루이자 자영업 레드오션의 대명사입니다. 누구나 쉽게 보고 시작했다 쉽게 망하는 사업 아이템으로 유명합니다.
당시 대만 카스테라는 폭발적인 유행 이후 많은 사람들을 빚더미 위에 앉힌 한국 사회의 프랜차이즈 시장에서 큰 이슈가 됐던 사업입니다. 그래서 대만 카스테라 사업의 몰락은 더욱 상징적입니다. 물론 그 사업의 구조 자체도 취약했지만, 우리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한 매체의 보도였습니다. 이른바 식용유 논란. 이 논란 하나에 그나마 취약했던 대만 카스테라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연쇄적으로 망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것을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 중산층이 얼마나 위태로운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반지하의 삶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말입니다. 기택과 근세의 가난은 물려받은 가난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의 영화 속 현재를 지켜보는 것이 더욱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3. 국가가 해야할 최소한의 역할

그렇게 몰락한 기택과 충숙(장혜진), 기우(최우식), 기정(박소담) 한 가족과 문광(이정은)과 근세 두 부부는 박 사장 가족에 기생하는 삶을 택합니다. 박 사장 집에서 일하던 윤기사와 문광을 몰아내야 기택과 충숙의 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지하에서 조용히 기생하며 사는 근세의 존재마저도 위협합니다. 함께 연대하며 살아갈 방법도 있었지만 켜켜이 쌓인 오해와 우연은 그 기회조차 만들어주지 못합니다. 부자들 속에서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살아가는 것이 마냥 좋은 기우는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작은 위협조차 제거하려다 참변을 부르고 맙니다.
때 아닌 폭우가 쏟아진 가을밤. 높디높은 곳에 위치한 부잣집 미제 텐트에 작은 생채기 하나 못 낸 비는 흐르고, 흐르고 또 흘러 저 아래 쪽에 사는 반지하 빈민들의 삶을 하룻밤 만에 초토화시켜 버렸습니다. 연대하지 못하고 사회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사회의 위험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붕괴되고 미약한 시스템 속에서 개인의 분투와 노력은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결국 안전한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답입니다. 섣부른 보도 하나로 많은 자영업자들을 위기에 빠뜨리고 사과 한 마디 없던 언론의 모습은 추악합니다. 이런 작은 위기에도 무너져버리는 중산층의 삶이라면, 얼마나 위태로운 사회입니까. 감독은 많은 프랜차이즈 상품 중에 왜 하필 대만 카스테라를 망한 사업 아이템으로 이야기했을까요? 외부 요인에 너무 쉽게 무너져버린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예로 들어 중산층의 위험과 국가가 구축해야 할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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