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흥행 영화의 변수
매년 수많은 영화가 개봉해 관객들과 만납니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영화 중 흥행적인 측면에서 독특한 두 편을 꼽는다면 ‘청년경찰’과 ‘범죄도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두 편의 영화는 결이 많이 다릅니다. 일명 텐트폴이라 불리는 대작들은 연초부터 소위 흥행 영화 기대작 명단에 끝없이 오르내리며 화제성을 갖지만 ‘청년경찰’과 ‘범죄도시’는 이 영화들과 달리 한 마디로 의외의 흥행 영화였습니다.
두 편의 영화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블록버스터들이 맞대결을 벌이는 흥행 최고의 대목, 2017년 여름방학 시즌과 추석 시즌의 사실상 승리자였습니다. 그해 여름 ‘청년경찰’은 영화계 전체가 ‘택시운전사’와 ‘군함도’의 승부에 주목하고 있을 때 틈새시장을 충실히 공략하면서 무려 565만 명이 넘는 관객의 선택을 받았습니다(손익분기점 200만 명). 추석 시즌엔 ‘남한산성’과 ‘킹스맨, 골든 서클’의 양자 대결이 이뤄질 것이라고 모두가 예측했지만, 좀비도 맨손으로 때려잡는 마동석의 힘을 간과했던 걸까요, 승자는 ‘범죄도시’였습니다. ‘범죄도시’는 최종 688만 명의 관객의 선택을 받아 역대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 흥행사를 다시 썼습니다(손익분기점 220만명).
청년경찰 감독 김주환 출연 박서준, 강하늘 개봉 2017.08.09. |
범죄도시 감독 강윤성 출연 마동석, 윤계상 개봉 2017.10.03. |
2. 유쾌한 액션 영화
기대하지 않았던 흥행을 이룬 것 외에도 많지 않은 예산을 쓴 유쾌한 액션 영화라는 점, 안정적인 흥행을 위해 멀티캐스팅이 대세인 충무로에서 흥행성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강하늘, 박서준을 투톱으로, 마동석을 원톱 주연으로 과감하게 내세워 반전에 성공했다는 점 등도 비슷한 점으로 꼽힙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두 영화 모두 이른바 조선족들의 범죄를 소재로 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두 영화의 중대한 차이가 발견됩니다. 둘 다 잔혹한 조선족 범죄를 다뤘지만 ‘청년경찰’은 개봉 당시 조선족 단체로부터 엄청난 항의를 받았고, ‘범죄도시’는 어찌 보면 조선족들이 훨씬 잔인하게 묘사됐음에도 어떠한 항의 하나 받지 않았습니다. 이 차이는 조선족 공동체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청년경찰’은 조선족 거주 지역을 택시 기사의 대사 한 줄로 묘사해 버립니다. 영화 전개상 군더더기를 없애기 위해 그랬을 테지만, 그냥 가볍게 지나가 버린 그 대사만을 들은 사람은 그 지역이 경찰들도 포기해 버린 범죄의 온상, 단순한 우범지대로 인식할 것입니다. 이에 반해 ‘범죄도시’는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 더 깊이 있는 시선을 보냅니다. 조선족 거주 지역 내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하는 경찰들의 이야기지만, 그 지역을 범죄 없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경찰들에게 협조한 중국 동포들의 노력에도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3. 영화의 시선
영화는 사람들에게 ‘편견’을 심어주기 좋다는 점에서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청년경찰’에 발끈한 중국동포 커뮤니티가 오버액션을 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최근 한국영화의 흐름을 본다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영화 ‘신세계’, ‘황해’ 등에서 묘사된 중국 동포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라. 한때 할리우드에서 흑인이나 외국인 이민자들을 손쉽게 악당으로 묘사했듯 한국 영화에서도 중국동포, 또는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노동자들을 악당으로 묘사하는 일이 많습니다.
낯선 것은 두려움을 만듭니다. 어느 사회에나 범죄, 범죄자는 존재하지만 한 사회의 소수자가 일으키는 범죄는 침소봉대(針小棒大)되기 십상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 일면만을 보고 하나의 공동체를 통째로 범죄자 또는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영화 매체가 그런 현상을 더 강화한다면, 혹은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그냥 흘겨보고 말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한국 사회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도 꽤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결혼 이주민, 이주 노동자들의 유입으로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더 가속될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타자화한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질 것입니다. 미국이나 유럽만큼은 아닐지 모르지만, 산업이 고차원화 될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차별과 편견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분명한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충분히 좋은 선택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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