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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TV 리뷰

치열했던 최후의 격전지 애록고지 이야기 ‘고지전’

by 한국의 잡학사전 2022.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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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전
감독 장훈
출연 신하균(강은표), 고수(김수혁), 이제훈(신일영)
개봉일 2011.07.20. 개봉

1.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요?

1953727일 강원도 동부전선 애록고지. 하루에도 몇 번씩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처절한 전쟁이 12시간 후면 끝이 납니다. 전우들을 하나하나 떠나보내면서도, 약에 의지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미치광이가 돼 가면서도 처절하게 살아남은 이유는 살아서 고향에 가겠다는 희망이었습니다. 12시간 뒤 휴전협정이 체결되면 지긋지긋한 고지전을 끝내고 죽지 않고 살아서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그것 하나만 바라보고 버티고 버텼습니다. 살아남았습니다. 12시간.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시간을 보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그 얼마 안 되는 시간의 평화마저 용납하지 않습니다. 휴전선이 그어지기 전 단 하나의 고지라도 더 남한이 차지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야 한 뼘의 영토라도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고지가 휴전선의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야 전쟁이 끝난다고 환호하고 있는 악어 부대원들에게도 잔인한 전투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애록고지를 차지하라는 너무나 잔인한 명령이었습니다. 북한과 중국군이 차지하고 있는 고지를 휴전협정 체결 전에 탈환해야 합니다. 마지막 전투가 펼쳐집니다. 이 전투에서도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됨마저 포기하며 먼저 떠나보낸 이들은 전우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습니다. 이데올로기, 정치놀음, 그딴 건 모르겠습니다. 오로지 생존만이 지상의 목표이자 목적입니다.

2. 처절한 영화 고지전

영화 고지전’(감독 장훈·2011)은 처절합니다. 영화의 시작은 정치적이었습니다. 휴전 협상이 한창이던 1953년 초, 동부전선 애록고지에서 사망한 중대장의 시신에서 아군 총알이 발견됩니다. 더구나 북한군의 편지가 발견되는 일까지 발생합니다. 방첩대 중위 강은표(신하균 역)가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애록고지 악어부대로 파견됩니다. 강은표가 느끼는 악어부대의 공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1951년 이후 2년간 고지전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상한 일 투성입니다. 죽은 줄 알았던 친구 수혁(고수 역)은 어느새 중위로 진급해 악어부대를 실질적으로 지휘하고 있고, 이제 갓 스물이 넘은 대위 신일영(이제훈 역)의 행동도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과연 지난 2년간 악어부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전장으로 내몰려 매일매일 전우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고지전속 인물들이 제정신이길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 것입니다. 남한군이나 북한군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고지 하나를 두고 공수를 반복하고 싸웁니다. 필요하면 피아(彼我)를 구분하지 않고 죽여야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인간성, 도덕률 따윈 사치입니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남과 북으로 갈라지지 않았다면 예쁜 인연이 됐을지 모를 남녀가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상황에서 정상비정상은 무엇이며, 이데올로기 따위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제야 살았다고 안심한 이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정부, 전장에서 희생된 수만 명의 군인들에게 국가는, 정부는 어떤 존재였을까요.

3. 전쟁의 끝은 언제일까요?

그토록 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1953727,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전쟁이 멈췄을 뿐입니다. 그날 이후,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터였습니다. 남과 북의 기득권 세력은, 그리고 한반도 주변의 초강대국들은 이 전쟁 상황이 계속되기를 바라 왔습니다.. 그들의 기득권 유지에, 국익에 한반도의 이 멈춰있는 전쟁상태가 더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2년간 처절한 고지전의 결과로 만들어진 지금의 휴전선은 지난 70년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유지돼 왔습니다. 북쪽의 휴전선은 반도였던 남한을 섬으로 만들었습니다. 휴전선에 익숙해진 우리는 그만큼 좁아진 사고와 의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휴전선마저 분단 상황마저 익숙해진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이 이 땅의 젊은이들을, 국민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나라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도상 한 뼘도 안 되는 영토를 더 차지하기 위해 수만 명의 젊은이들을 고지전에서 희생시키는 것을 당연시하는 나라는 아니길 희망합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은 이를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이제 꿈만 꿔왔던 비전이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민족 간의 전쟁을 끝내야 합니다. 6.25 전쟁으로 희생된 영령들도 하늘에서 이 위대한 도전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치열한 노력과 고민 없이, 결코 진짜 평화를 가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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