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Spotlight 장르 : 드라마, 스릴러 개봉일 : 2016.02.24. 감독 : 토마스 맥카시 주연 : 마크 러팔로(마이크 레젠데스), 레이첼 맥아담스(샤샤 파이퍼), 마이클 키튼(월터 로빈슨) |
1.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한 명의 가톨릭 사제가 상습적으로 아동에 대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냥 수많은 사제 중 한 명의 일탈,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충분히 넘어갈 수 있을 일입니다. 그러나 보스턴 지역신문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 팀(일종의 특종팀, 탐사 보도팀)은 이 사건이 단순한 개인의 일탈로 벌어진 일이 아님을 확인하고 기나긴 추적에 나섭니다.
2016년 아카데미영화제 작품상과 각본상을 받은 영화 ‘스포트라이트’(감독 토마스 맥카시)는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음을 알리고 시작합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사실’의 힘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스포트라이트’는 거대한 사건을 파헤치는 언론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치고 사실 좀 심심할 수 있습니다. 보통 이런 영화들은 특종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기자들이 취재하다 우연히 어떤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고, 그 때문에 위기에 처하고 극적인 반전에 반전을 거쳐 진실을 세상에 전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기 마련입니다. 이런 부류의 영화들의 전형적인 클리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포트라이트’는 이 쉽고도 전형적인 길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영화는 지루하고 지루한 자료 탐색부터 피해자와 증인 탐문, 법원과의 정보 공개 다툼 등 실제 기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다큐멘터리처럼 연출했습니다.
그러나 ‘실화’의 힘은 강합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영화가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갈수록 실제 미국 사회, 그것도 가톨릭이라는 ‘성스러운’ 영역에서 저러한 파렴치한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관객들은 충격을 느끼고 분노합니다. 그리고 기자들이 진실을 밝혀가는 과정을 응원합니다. 진실에 가까이, 매우 가까이 다가설 무렵, 9.11 테러가 터지고 미국 전체 언론의 시선이 9.11 테러 사건에 집중됨으로써 이 사건의 진실이 덮여버릴 수도 있는 위기가 터졌을 때, 관객들은 영화 속 기자들과 같이 절망합니다. ‘스포트라이트’가 간직하고 있는 실화의 힘이자, 세밀한 각본의 힘과 연출의 힘입니다.
2. ‘시스템에 집중하라’
영화 속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 팀 팀장 로비(마이클 키튼)가 동료 기자 마이크(마크 러팔로)에게 말하는 ‘시스템에 집중하라’라는 부분입니다. 사건이 파헤쳐질수록 가해자는 단 한 명의 사제가 아니라 수십 명에 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이 사실에 분노한 마이크는 당장 빨리 기사를 써서 이 작자들을 처벌하자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로비는 사제 몇 명 처벌하는 것으로 사건을 끝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있는 보스턴 가톨릭 전체의 썩어빠진 시스템과 이 시스템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는 보스턴 사회 전체를 건드리지 않고서는 계속 반복적으로 발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스포트라이트 팀은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성추행 사건이 다수 사제에 의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벌어지고 있음을 알고도 이를 감추고, 그 사제들이 다시 다른 교구에서 일할 수 있도록 묵인한 보스턴 가톨릭 사회의 추악한 진실을 확인하고, 증거를 찾고, 폭로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보스턴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미국 사회 전역, 전 세계적인 문제임을 확인합니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실체적 진실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이 사건을 수십 년 전 처음 인지했지만, 그냥 흘려버렸던, 언론 자신들도 이 사건의 가해자 중 하나임을 자인합니다. 자신들의 날카로운 비판에서 그들 자신도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분명 의미 있는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현실과 참으로 다른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흔히 무슨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나 작은 집단에 집중합니다. 수많은 사건 사고들을 다뤘던 언론의 태도처럼 말입니다. 왜 그런 사건이 지속해서 벌어지는지 시스템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대학 입시 중심의 교육, 사교육 열풍을 해결하기 위해 내놓는 대책이란 것이 대학입시 제도 개편 따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정말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외면하는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정작 문제는 부가 대물림되고, 공정한 경쟁이 도저히 이뤄질 수 없는 대한민국 사회의 시스템인데, 언론도, 정부도 모두 달은 쳐다보지 않고 손가락만 바라봅니다. 그리고 몸통이 아닌 깃털과 꼬리만 뽑고 잘라냅니다. 이들에게 로비 팀장처럼 외치고 싶습니다. “제발 시스템에 집중하라”고 말입니다.
'영화-TV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기의 지상파 TV 예능, 돌파구 없나? (4) | 2022.09.02 |
---|---|
공조2 개봉, 남북한을 소재로 한 한국 영화 흥행 순위 TOP 10(영화 관객수 기준) (6) | 2022.09.01 |
누구를 위해 ‘드럼’을 두드리나, 영화 ‘위플래쉬’ (8) | 2022.08.30 |
“현재를 즐겨라” 이 시대 청춘을 위한 영화 ‘족구왕’ (2) | 2022.08.29 |
아이들에게도 사랑방이 필요해 ‘미나문방구’ (2) | 2022.08.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