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플래쉬 Whiplash, 2014 장르 : 드라마 미국 개봉 : 2020.10.28 재개봉, 2015.03.12. 주연 : 데이미언 셔젤마일즈 텔러(앤드류), J.K. 시몬스(플레쳐) |
1.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육이나, 조직 내에서 성과를 이끌어내는 부분에서 가장 핵심이자 기본은 학생(혹은 조직 구성원)들에게 동기부여입니다. 동기부여를 위한 많은 방법들이 있을 테지만 인간의 인정 욕구를 자극하는 칭찬이 매우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더구나 칭찬은 긍정의 에너지를 이끌어내고, 조직 화합을 위해서도 효과적이다 보니 칭찬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특히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만연되어 있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군사 문화, 병영 문화에 대한 반대급부가 커서 그런지 한때 칭찬 신드롬이 불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최고의 명문 음악대학 ‘셰이퍼 음악학교(영화 설정상 줄리아드 음대를 모델로 한 가상의 음악학교라고 합니다)’ 내에서도 ‘최고의’ 재즈밴드인 ‘스튜디오 밴드’의 지휘자 플레처에게 칭찬 따윈 말 그대로 ‘헛소리’입니다.
2. 영화 위플래쉬 이야기
영화 ‘위플래쉬’에 등장하는 음악대학 교수 플레처(J.K.시몬스)는 한마디로 폭군입니다. 그는 연주자를 길러내고 밴드의 실력을 유지하는데 최고의 실력자입니다. 교내 밴드인 스튜디오 밴드는 개인 소유와 다름없고 밴드 내에서 그의 말은 곧 법입니다. 재능과 열정이 있지만 실력이 없는 연주자들의 근성과 광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모욕적인 말과 욕설을 서슴없이 내뱉고, 폭력을 쓰는 것도 불사합니다. 그는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고 가치 없는 말이 ‘그만하면 잘했어’야”라고 말합니다. 재즈 명곡이자 ‘채찍질’이라는 이중적인 뜻을 가진 영화 제목(위플래쉬)처럼 그는 최고의 음악가이자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혹독한 선생입니다. 갑자기 세상을 뜬 제자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는(그 눈물조차 진심인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곧바로 세 명의 드럼 연주자들에게 폭풍 같은 욕을 쏟아내며 몇 시간 동안 누가 메인 연주자가 될지 가르는 경쟁을 시킵니다. 연주자들의 손에서 피가 나고, 그들이 탈진해 쓰러질 때까지 말입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별일 아니라는 듯 멤버를 잘라버리고, 연주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자극제로 사용하기 위해 경쟁자를 영입합니다. 수단과 방법, 그따위 것 가리지 않는 인물입니다.
영화는 플레처의 방식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플레처의 대척점에 서 있는 주인공 앤드류 네이먼의 변화, 성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관객들에게 전합니다.
앤드류는 전혀 주체적인 캐릭터가 아닙니다. 영화 초반 앤드류와 그의 아버지가 영화를 보며 팝콘을 먹는 장면에서 그의 캐릭터가 설명됩니다. 앤드류는 건포도를 싫어하지만 그 사실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의 좋고 싫음보다 남이 나를 보는 시선을 더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앤드류가 우연히 플레처의 눈에 띄고 스튜디오 밴드의 메인 드럼 연주자가 되기 위해 손에 피가 날 때까지 연습에 매진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오로지 플레처에 눈에 들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무시하는 가족, 친척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성공을 위한다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결론짓고 그토록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도 헤어지는 선택을 합니다. 영화 ‘곡성’의 대사처럼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 버디 리치나 찰리 파커 같은 최고의 연주자가 되겠다며 앞만 보고 질주합니다. 그렇게 앤드류는 플레처의 광기를 닮아갑니다.
3. 나를 위한 삶
영화의 마지막 장면, 카네기홀에서의 연주 장면에서 전율을 느끼는 것은 앤드류가 드디어 주체적인 삶을, 누구를 위한, 누가 되기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것을 관객 입장에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플레처는 앤드류에게 연주를 시키며 끊임없이 ‘나의 템포에 맞추라’고 강요합니다. 앤드류의 피나는 연습도 결국 플레처의 템포에 맞추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말미 플레처에게 공개적인 망신을 당하고 연주자의 삶이 끝이라고 느껴지는 절망의 순간, 앤드류는 플레처의 부속물도, 밴드의 일부분도, 남들이 봐주기 원하는 그 무엇도 아닌 오롯이 자신의 템포에 맞는 자신만의 연주를 시작합니다. 온갖 폭력과 멸시와 조롱과 경쟁자의 영입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앤드류를 최고의 연주자로 만들고자 했으나 실패했던 플레처조차 앤드류의 진짜 연주에 감흥하고 그의 음악과 교감하기 시작합니다.
동기 부여를 위해서 칭찬도, 플레처의 방식과 같은 폭력도, 무한 경쟁도, 인정 욕구도 어쨌든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어떤 ‘수단’이 답일 수는 없습니다. 등산이나 마라톤을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이 아닌 자신의 템포에 몸을 맡기는 것입니다. 부모의 욕심과 남들의 시선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것, 동기부여를 위해 이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겠습니까. 늘 플래처의 템포에 맞춰 연주하기 급급하던 앤드류가 플레처에게 “신호를 기다리라”고 자신 있게 외쳤을 때 진짜 연주, 진정한 삶이 시작된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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