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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TV 리뷰

황산벌, 지배자가 아닌 국민의 눈으로 바라보다

by 한국의 잡학사전 2022.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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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산벌 전투 이야기

영화 황산벌’(감독 이준익·2003)은 삼국시대 말 신라와 백제가 벌인 황산벌 전투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서기 660년 나당연합군의 백제 공격과 이를 막으려는 백제 장군 계백의 전투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여느 전쟁영화라면 아마도 김유신과 계백의 지략 대결, 그리고 5,000명 백제군과 5만 신라군의 전투를 스펙터클하게 그리는데 힘을 쏟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독 이준익은 진지한 전쟁 영화로 잔뜩 폼을 잡는 대신 해학과 풍자를 통해 역설적으로 더욱 진지하게 전쟁과 역사, 인간에 대해 고찰합니다.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백제군과 경상도 방언을 쓰는 신라군이라는 설정부터 무척 재밌습니다. 지금보다 더욱 지역 간 교류가 없었던 그 시대, 기존 사극을 보면 모두가 표준말을 쓰는 것이 어쩌면 더욱 이상한 일일 텐데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왔습니다. 역시 습관과 익숙함이라는 것이 주는 안일한 대응이 있습니다. 어찌됐든 가벼운 발상의 전환을 통해 감독은 관객들에게 일단 큰 웃음을 주며 영화를 시작합니다. 영화 속 사투리 대결, 각 지역의 특색을 드러내는 구수한 욕설, 그리고 거시기라는 단어 하나로 혼란에 빠지는 신라군의 모습 등 사투리를 매개로 한 언어와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라는 설정은 영화의 소소한 재미를 책임집니다.

2. 사투리를 통한 웃음 코드

이준익은 그러나 사투리를 통해 웃음을 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소위 지도층, 권력층, 지배자들을 바라보는 이준익의 시각이 진짜 영화를 보는 포인트입니다. 서로가 갖가지 명분을 앞세워 전쟁을 일으키고,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민초들을 전쟁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지만, 결국 그 이면에는 자신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악한 욕망이 자리 잡고 있을 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손해 보지 않을지 계산하며 의자왕과 백제를 위기에 몰아넣고 계백이 그 가족마저 베어버리고 전쟁에 참전하게 만든 백제의 귀족들이나 김유신을 앞세워 권력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신라의 왕족들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특히 계백군에 연전연패하며 위기에 몰리자 어린 화랑들(심지어 자신의 아들까지도)을 희생양으로 삼아 신라군의 전의를 불러일으키고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신라군 장교들의 모습을 통해 지배계층의 이러한 욕망을 노골적으로 풍자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압권은 마지막 부분, 계백의 부인이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계백은 황산벌 전투에 나서기 전 자신의 부인과 자식을 모두 죽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그 장면에서 상상치도 못했던 설정이 등장합니다. 계백이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며 아내와 자식들을 베려하자 계백의 아내는 이렇게 말하며 저항합니다. “입은 삐뚫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 했다. 호랭이는 가죽땜시 디지고, 사람은 이름땜시 디지는 것이여라고 말입니다.

3. 민중의 역사를 기록하자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역사에서 계백은 영웅입니다. 나라를 위해 가족마저 희생시키며 5,000의 돌격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서 장렬하게 전사한 영웅. 그러나 영화 황산벌은 우리가 배웠던 역사가 어느 정도로 국가주의에 경도되어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아무 죄도 없이 단지 계백의 아내, 계백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희생되어야만 했던 그들의 입장은 생각해볼 겨를조차 없었으니 말입니다. 또한, 지배자들의 논리, 그들의 허울 좋은 명분을 이유로 일어난 전쟁에서 수 없이 스러져간 민초들의 삶은 또 어떠합니까. 감독은 몰살당한 백제군 중 유일하게 단 한 사람의 생존자를 남깁니다. 장군도 아니고 귀족도 아니고, 시골에서 늙은 어머니 모시고 착하게 농사지으며 살아온 민초 거시기’(이문식 역)입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는 수많은 국가가 탄생했다 사라져 왔습니다.. 그럴듯한 철학과 정치 이념, 통치방식을 앞세운 수많은 왕국들도 수백 년, 수천 년을 넘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우리가 배운 역사는 지배자의 역사입니다. ‘태정태세문단세왕의 역사를 외우며 역사를 배웠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러나 수만 년 고고한 역사 속에서 꿋꿋이 살아남고, 살아냈던 우리네 민중의 역사는 너무도 무시해 온 것은 아닐까 생각해봐야 합니다. 감독은 영화 황산벌을 통해 지배자가 아닌 민초의 시각으로 역사를 보자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황산벌을 보며 웃고 울었을 우리들, 역사의 흐름 속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 바로 진짜 역사의 주인인 수많은 거시기중 하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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