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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TV 리뷰

‘그래비티’, 광활한 우주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다

by 한국의 잡학사전 2022.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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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력'이라는 단어의 영화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너무나 많은 학생들을 힘들게 했던 단어, 중력입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중력’이라는 물리 수업시간에나 들을 법한 딱딱한 제목을 단 SF영화 한 편이 화제를 모았습니다.

영화 그래비티’(감독 알폰소 쿠아론·2013)는 극영화라기보다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활약하는 우주인들의 일상을 담담히 그려낸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풍기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겉으로 풍기는 느낌과 달리 그래비티는 시종일관 관객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수작 SFSF 스릴러 영화입니다.

영화의 내용은 너무 간단합니다. 미국 나사(NASA) 소속의 유인 우주선을 탄 다수의 우주 비행사들이 지구로부터 600Km 떨어진 지점에서 우주 관측용 허블 망원경을 수리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 평온하던 우주선에 이내 위기가 찾아옵니다. 주변 러시아 위성이 폭발하면서 그 잔해가 우주선과 같은 궤도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몰아치는 파편 조각 속에서 처음으로 우주 비행에 나선 초짜 우주인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와 최장 시간 우주 유영 기록을 넘보며 은퇴를 앞둔 베테랑 우주선 책임자 코왈스키(조지 클루니) 만이 구사일생 목숨을 건집니다. 생존자 두 사람은 90분 주기로 궤도를 도는 파편 조각을 무사히 피하고, 산소 부족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까지 이겨내야 무사히 지구로 귀환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생존을 위한 일생일대의 모험을 시작합니다.

2. 경이로운 영화

그래비티는 여러모로 경이로운 영화입니다. 영화 홍보 문구처럼 외계인도, 우주 괴물도, 우주 전쟁도, 슈퍼 히어로도 등장하지 않지만, SF영화로서 충분한 재미와 흥분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그 재미와 긴장감이 실제 천체 물리학, 나사의 우주 활동 등 과학적인 사실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흥미롭습니다.

멕시코 출신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이 장르에서 섣불리 하지 않을 독특한 실험을 감행했습니다. SF영화라 하면 대규모 출연진 등 규모를 앞세운 스펙터클을 기대할 만하지만 이 영화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마치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고 항변이라도 하듯 연극적인 설정을 선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한두 명의 출연자가 무대를 장악하고 극을 이끌어 가는 연극과 같이 산드라 블록과 조지 클루니라는 관록 있는 두 사람의 베테랑 배우가 전체 극을 주도합니다. 대신 드라마의 빈틈을 울림 있는 대사와 설정들로 메우며 관객들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비티의 진정한 매력은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가장 비일상적인 공간인 우주라는 곳에서 생사의 기로에 선 주인공들을 통해 역설적으로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설명합니다. 최장 시간 우주 유영 기록에서 단 몇 시간 부족한 채로 우주인 생활을 은퇴해야 하는 우주선 책임자 코왈스키는 일상 예찬론자입니다. 지루한 임무를 수행할 때도, 일촉즉발의 위기를 벗어났을 때도, 퇴근 후 즐기는 보드카 한 잔의 여유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행복하게 이야기합니다.

이에 반해 스톤 박사가 우주에 온 이유는 가슴속에 단단히 뿌리내린 상처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구에서 만나는 사람들, 상황들, 그 모든 일상이 그의 상처를 후벼 파서 덧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광활하기 짝이 없는 우주 속에서 외롭게 죽음과 사투를 벌이며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상처와 당당히 맞서기로 마음먹습니다. 우연히 무전을 통해 지구로부터 들려온 일상의 소리, 개가 짖고, 웃고, 가족과 다정하게 대화하는 그 소리가 우주가 좋은 이유는 조용하기 때문이라던 그녀의 닫힌 마음을 열리도록 만듭니다.

3. 일상의 소중함

일상은 누가 뭐라 해도 벗어나고 싶은 것입니다. 산호색으로 빛나는 남태평양이나 아프리카 오지, 유럽의 고도는 어쩌면 우리의 이상향입니다. 여행이라는 잠깐의 일탈이 우리의 삶에 새로운 에너지를 선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평소에 공기나 물의 소중함을 잊고 살 듯, 중력 위에 두 발 딛고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이 소중하다는 가장 평범한 사실도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사람, 나의 일, 퇴근 후 즐기는 소소한 삶의 즐거움, 어쩌면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가장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비일상적인 사건을 다룬 영화가 보여준 일상 예찬’, 그것만으로도 그래비티는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오늘이 가장 평온한 하루이며 우리가 바라는 하루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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