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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TV 리뷰

영화 택시운전사, 더 이상 고립되지 않을 '광주 정신'을 말하다

by 한국의 잡학사전 2022.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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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픈 역사 이야기

누군가 들을세라 광주에서 벌어진 군인들의 만행은 귓속말로 전해졌습니다. 광주 이야기를 하다 잡혀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나은 결과였습니다. 두려운 공기를 뚫고 어렵사리 전해진 이야기들은 흉흉했습니다. 귀로만 듣는데도 끔찍했습니다. 슬펐습니다. 옆 동네 성당에서 몰래 상영한 광주 영상을 보고 온 친구들은 며칠간 밥을 못 먹었다고 했습니다. 귀로 듣는 것도 이토록 무섭고 힘든데, 영상을 볼 용기 따위는 생기지 않았습니다. 광주민주항쟁 이후 수년이 지났지만 어떤 방송도, 신문도 광주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광주에 대한 기억은 이렇게, 입에서 입으로 떠돌며 만들어졌습니다. 광주에 대한 진실을 안다는 것이 그토록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2. 영화 택시운전사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2017년)의 주인공 만섭도 마찬가지입니다. 1980년 봄,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구도 말해 주지 않았고 알 수도 없었습니다. 택시운전으로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는 만섭에게 민주화 투쟁, 대학생들의 데모는 그저 배부른 투정과 같이 보였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생업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인식됐습니다. 이처럼 당시를 살아간 대다수의 장삼이사와 같았던, 평범한 시민 만섭의 인생은 푸른 눈의 외국인 기자를 만나면서 바뀌게 됩니다. 광주를 영상에 담기 위해 한국으로 날아온 독일 공영방송 ARD의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그를 태우고 단 하루 안에 광주와 서울을 왕복하면 당시 돈 10만 원의 거금을 준다는 말에 혹한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힌츠페터와 동행하게 됩니다. 어렵사리 광주 잠입에 성공한 그는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광주 민주항쟁을 다룬 영화들은 이전에도 몇 편 있었습니다. 장선우의 ‘꽃잎’부터 이창동의 ‘박하사탕’을 거쳐 ‘화려한 휴가’와 ‘스카우트’, ‘26년’ 같은 영화들이 꾸준히 만들어졌고, 화제를 낳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의 의미는 더욱 큽니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철저히 고립됐었습니다. 그 이후 문민정부, 민주정부들이 탄생하기까지 광주는 외로웠습니다. 아니 그 이후에도 외로웠을 것입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민주정부에서 광주 민주항쟁의 진실이 알려졌고, 위상은 올라갔으며, 광주를 말하는 것이 더 이상 금기가 아닌 시대가 됐지만, 광주는 여전히 고립돼 있었습니다. 평범한 시민들에겐 그저 전라도의 한 지역에서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었고, 어떤 자들에게는 지금까지도 폭도와 빨갱이들이 저지른 폭동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고립됐던 광주에 따뜻한 위안의 손길을 전합니다. 그리고 광주의 정신이 지금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줍니다. 그 시절 힌츠페터와 택시운전사 김사복이 그랬던 것처럼  촛불 혁명의 시대를 거쳐 살고 있는 우리에게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광주의 희생자들, 그들도 평범한 시민들이었음을 대변합니다. 그들의 분노가 정당했음을 역설합니다. 그들의 희생이 거룩했음을 증언합니다.

3.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당시 광주 시민들은 외롭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연대했고, 기꺼이 희생했습니다. 주먹밥과 기름, 생필품을 나눴고, 앞장선 학생들을 보호하려 최선을 다했습니다. ‘택시운전사’는 그랬던 광주의 모습을 재연하고 있습니다. 광주의 투쟁은 군부정권의 연장을 끝내 막지 못했지만, 광주의 희생은 1986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앞당겼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2017년 5월 광주항쟁 기념식은 감동이었습니다. 피해자들과 희생자 가족들이 행사의 주인공으로 초대됐고, 촛불 혁명으로 수립된 정부의 대통령은 ‘5.18 둥이’ 희생자의 딸을 따뜻하게 안아줬습니다. 그래서 영화 ‘택시운전사’의 의미가 더욱 크게 가슴 깊이 전해집니다.
5.18 광주 민주항쟁의 정신이 헌법 전문에 실릴 가능성이 열리고 있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열망했고, 이를 위해 연대하고 희생했던 광주의 정신. 비록 이 정신이 헌법 전문에 실리지 않더라도 그 정신은 계속해서 계승될 것입니다. 그래서는 결코 안 되지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한 걸음이라도 후퇴하는 날, 이 정신은 다시 살아날 것이고 대한민국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할 것입니다. 위르겐 힌츠페터와 택시기사 김사복이 1980년 5월 전 세계에 전했던 ‘광주 정신’의 힘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광주에 빚을 지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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