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기
돈과 성공보다 작은 사랑과 배려, 그리고 희생이 행복의 조건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에게, 어떤 행복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OECD, UN 등에서 종종 국가별 행복지수에 대해 발표합니다. 기관마다 조사하는 기준도 다르고, 평가하는 항목들도 다르다 보니 결과들이 제각각이긴 하지만, 어찌 됐든 꽤 의외의 결과물들을 언론을 통해 접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국민소득이 우리의 1/10 정도에 불과한 부탄이 행복지수 1위라든지, 방글라데시, 코스타리카, 베트남 등 우리가 강대국이나 경제적으로 선진국으로 꼽지 않는 국가들이 행복지수 상위권에 포진되는 경우들이 그렇습니다. 물론 행복을 숫자로 나타내겠다는 발상 자체가 그리 현명한 생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경제적인 부가 반드시 행복과 직결되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는 점에서 이런 조사들이 분명 의미는 있는 것 같습니다.
2. 영화 이야기
이란 영화 ‘천국의 아이들’(감독 : 마지드 마지디ㆍ1997년)을 보면 부탄이나, 방글라데시, 베트남 등이 우리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초등학생 알리는 동생 자라의 구두를 수선하러 시장에 갔다 동생의 신발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집안 형편도 어려운 데다, 이 사실을 엄한 아버지에게 말했다가는 어떤 날벼락을 맞을지 두렵기만 한 알리는 묘안을 짜내기에 이릅니다. 오전반인 여동생과 오후반인 자신이 운동화를 번갈아 신기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 일일 리가 없습니다.
낡아빠진 오빠의, 더구나 자신의 발보다 훨씬 큰 신발을 신은 자라의 모습은 한없이 초라하기만 합니다. 큰 신발을 신고 학교를 오가다 보니, 돌아오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 오후반 오빠는 동생을 채근하지만, 학교에 수시로 지각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어린이 입장에선 힘들기만 한, 이러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알리는 동생 신발을 찾으려고 동분서주하지만 헛수고만 할 뿐입니다.
나름 힘든 나날을 보내던 두 남매에게 어느 날 희망의 메시지가 날아듭니다. 어린이 마라톤대회가 열리고, 3등 상품은 무려 ‘운동화’라는 것입니다. 매일 지각을 면하기 위해 뛰어서 학교에 다니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라톤 훈련을 해 온 알리에게 3위 정도면 충분히 가능한 등수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동생 신발을 찾아줄 수 있게 된 알리는 1등이 아닌 3위와 운동화를 목표로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합니다. 과연 알리는 동생 자라에게 운동화를 선물할 수 있을까요.
3. 생각해보기
영화 ‘천국의 아이들’ 속 풍경은 마치 우리가 살았던 70~80년대 한국의 모습 같습니다. 오전반, 오후반 수업을 하는 아이들, 운동화 살 돈도 아껴야만 하는 어려운 살림 등등. 그리고 가족끼리 서로 위하며 희생하는 모습까지 참 닮았습니다.
물론, 그때 그 시절이 좋았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문화적으로도 풍요로운 지금이 분명 그 시절보다 나쁠 리가 없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가 그때보다, 혹은 알리와 자라가 서로를 위하며 살아가는 이란보다 더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언젠가 언론과 SNS에서는 한국과 프랑스의 중산층 개념의 차이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중산층이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월급여 500만 원 이상, 2,000CC 이상의 중형 자동차, 예금액 잔고 1억 이상, 해외여행 1년에 한 번' 등 주로 경제적 부와 연관된 것이었다면, 프랑스는 ‘외국어를 하나 이상 구사해 폭넓은 세계를 경험할 것, 한가지 이상의 스포츠를 하거나 악기를 연주할 것, 남들과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별미 하나를 개발해 손님 접대할 줄 알기, 사회봉사단체에, 참여해 활동할 것, 남의 아이를 내 아이처럼 꾸짖을 수 있을 것, 사회 정의가 흔들릴 때 이를 바로잡기 위해 나설 수 있을 것’ 등으로 우리와 차이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회는 언제부턴가 나보다 경제적으로 더 잘 사는 사람과 비교를 통해 나의 행복의 정도를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슬픈 생각까지 듭니다.
불편하고 힘들어도 오빠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자라와 그런 동생을 위해 달리는 알리의 순수한 눈빛, 동생을 위해 힘들게 달리고 난 뒤 물속에 담근 발을 간질이는 물고기의 촉감, 그 촉감을 느끼는 알리를 비추는 따뜻한 햇살. 이런 작은 사랑과 배려, 그리고 희생이 행복의 조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에게, 어떤 행복을 가르치고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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