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해영, 이해준 / 출연 류덕환 / 개봉 2006. 08. 31.
1. '다른' 것과 '틀린' 것
우리가 평소에 가장 많이 ‘틀리는’ 표현 중 하나가 바로 ‘틀리다’는 말입니다. 서로의 취향이나 의견이 ‘다를’ 때, 우리는 흔히 “걔랑 나랑은 틀리지~!!”라고 말하곤 합니다. 우리 말을 설명하기 위해 심지어 영어 표현인 ‘different’와 ‘wrong’까지 끌어다 쓰며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고 설명들을 해대지만, 그때뿐일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방송에서도 출연자들이 이 두 표현을 잘못 쓰는 사례를 자주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2. 오동구의 꿈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2006년·감독 이해영, 이해준)의 주인공 오동구(류덕환)는 우리가 흔히 ‘보통’, ‘정상’이라는 범주 안에 포함시키는 취향과는 조금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 고등학생인 동구는 부두에서 막일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매일 아침 학교에 늦을 정도로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신분에서는 조금 큰돈, 500만 원을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동구가 생각하는 500만 원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일종의 종잣돈입니다. 동구의 꿈은 ‘마돈나’(처럼 되는 것)입니다. 동구는 500만 원이 다 모아지면 성전환 수술을 한 뒤, 마돈나와 같은 유명한 가수가 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동구는 여자 옷을 입는 것이 좋고, 서랍 속에 립스틱이며, 여성 화장품을 갖춰두고 얼굴을 꾸밀 때 행복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동구가 꿈을 이루는 것을 쉽사리 돕지 않습니다. 300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모았을 때쯤, 한때 복싱 챔피언을 꿈꾸다 부상으로 그 꿈을 접고 술주정뱅이가 돼 버려, 부인까지 도망가게 만든 원수 같은 독불장군 아버지(김윤석)가 회사 사장을 때리는 대형 사고를 쳐버린 것입니다.
합의금으로 어렵게 모은 돈을 날려 버리고 동구가 포기를 생각할 때, 절친 종만이 장학금 50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바로 씨름 대회에 참가해 우승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동구는 힘과 체력 하나만큼은 타고났습니다. 씨름에 소질도 있습니다.
트랜스젠더와 마돈나를 꿈꾸는 소년이, 헐벗은 채 남자끼리 몸 부대끼며 힘을 써야 하는 씨름부에 들어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지역대회에 참가한 동구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3. 꿈에 대한 이야기
‘천하장사 마돈나’는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는 주인공에 관한 영화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꿈을 꿉니다. 동구는 짓궂은 친구들이 여성 생식기를 가지고 놀리고, 괴롭히는 등 타인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든 묵묵히 자신만의 변치 않는 꿈을 꿉니다. 동구의 아버지는 좌절한 꿈의 상징입니다. 복싱 챔피언의 꿈을 접은 뒤, 무너져 버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술과 폭력에 의지하고, 자신만의 아집 속에 갇혀 사는 인물입니다. 그는 전형적인 마초이고, 자신과 ‘다름’을 좀체 인정하지 못합니다. 동구 아버지의 주정과 폭력을 못 이겨, 두 아들까지 놔두고 도망친 동구의 엄마는 너무 일찍 동구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고 시달리며 사느라 꿈꿀 틈도 없었습니다. 이제 동구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소소한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아들들을 가끔 만나는 것이 그저 행복할 뿐입니다. 동구의 가장 친한 친구, 중국집 아들 종만은 꿈이 너무 많습니다. 지지난주에는 기자가 꿈이었고, 지난주에는 씨름 선수가 꿈이었으며, 이번 주에는 래퍼가 꿈인, 그런 아이입니다. 사실 종만은 꿈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다수의 아이들이 동구를 괴롭히는 와중에도 묵묵히 동구를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종만은 어느 날 동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너는 되고 싶은 게 있잖아.” 하지만 동구의 입장은 다릅니다. “내 꿈은 뭔가가 되는 게 아니야. 난 그냥 살고 싶은 거야.”라고 말합니다.
동구는 그가 수술이라는 일차적인 꿈을 이룬 뒤에도 현재보다 더 많은 차별과 구별 지음으로 힘든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현재를 버텨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의 취향과 꿈을 나와 ‘틀리다’며 별종으로 취급하곤 합니다. 특히 성적 소수자와 같이 다수의 편이 아닌 사람들에게 더욱 가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찮게 여길 수도 있는 그들의 꿈이, 그들에겐 삶의 이유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천하장사 마돈나’는 코미디와 스포츠 영화의 틀 속에 잘 녹여내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의식 중에, 무의식 중에 타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일들이 어느 순간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도 똑같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인권 문제가 진정으로 어렵고, 무서운 문제인 이유일 것입니다. 그 어느 곳보다 교육 현장에서부터 다름과 틀림을 정확히 가르치고, 학습하도록 하는 것, 다양성이 생명이자 최고의 가치 중에 하나인 민주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차별받는 ‘오동구’들이 더욱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건강한 사회가 되기를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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