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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TV 리뷰

공동체 삶의 근본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 ‘부산행’

by 한국의 잡학사전 2022.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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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감독 연상호
출연 공유, 정유미, 마동석, 김수안, 김의성, 최우식, 안소희
개봉 2016.07.20.

1. 감독 연상호의 작품들

2021년 넷플릭스로 개봉되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드라마 지옥의 감독, 연상호. 그는 천만 관객 영화 부산행의 감독입니다. 영화 부산행은 한국 좀비 영화의 기틀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연상호 감독은 영화 '반도'(2020년 개봉), 영화 '염력'(2018년 개봉), 드라마 방법(2020년), 지옥(2021년), 괴이(2022년) 등을 통해 사회적 문제에 대한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어왔습니다.

좀비는 사실 그 자체로 모순인 존재입니다. 죽었지만 살아있는 시체라니. 어쩌면 이 아이러니가 전 세계적으로 대중들이 좀비라는 콘텐츠에 열광하는 이유인지도 모를 일입니다좀비라는 존재 자체가 모순인 것처럼, 좀비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모순적입니다.

좀비는 공포의 대상이자 연민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 사랑하는 존재마저도 좀비에게 물리는 순간 좀비로 변하며 나에게 위협적인 상대가 됩니다. 사랑하는 대상이 영혼이 없어진 채 악귀(혹은 아귀)처럼 오로지 나를 포함한 또 다른 존재를 감염시키기 위해 달려드는 모습을 보는 것은 진정 무서우면서도 서글픈 일일 것입니다.

또한 단순히 물고 물리는 행위만으로 감염된다는 좀비물의 설정은 순식간에 한 도시, 하나의 공동체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이며 관객들로부터 극도의 공포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이 좀비들이 열차 같은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을 물기 시작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2. 영화 이야기

영화 부산행’(감독 연상호)은 이른바 좀비물의 클리셰(상투적인 설정)를 충실히 받아들이면서도 한국적인 해석과 설정을 성공적으로 가미시키며 한국형 좀비열풍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설국열차에어포스 원같은 종류의 영화와 같이 좁디좁은 KTX 안에서 주요 사건들이 벌어지는 설정을 통해 관객들이 느끼는 긴장감과 공포감을 극대화시키는 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부산행이 눈길을 끄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행동, KTX라는 공간, 영화의 각종 설정들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 사회를 연상시키며 공감하게 만들었다는 부분일 것입니다.

 

부산행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바로 용석(김의성 역)입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을 실시간으로 짜증 나게 하고, 심지어 영화 속 캐릭터임을 알면서도 실제 마주치면 명치를 정말 세게 때리고 싶다는 욕구까지 불러일으켰던 인물. 특권을 누리는데 익숙하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짓밟고 일어서는 데 능한, 우리 사회의 전형적인 기득권. 천리마 고속 상무인 용석은 전형적인 꼰대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마냥 그를 욕할 수만은 없다. 만약 내가 열차 속에서 좀비에게 쫓긴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는 과연 용석과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요?

 

영화 초반 용석과 수안(극 중 공유의 딸)KTX를 몰래 탄 노숙자(최귀화)를 마주쳤을 때 용석은 수안에게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나중에 저렇게 된다”라고” 말합니다. 용석의 캐릭터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영화 후반부 좀비에게 물려 서서히 좀비로 변해가던 용석은 집에서 맛있는 걸 해놓고 기다리고 있을 엄마를 찾습니다. 지금은 꼰대지만 용석도 집에선 착한 아들이었을 것입니다. 좋은 친구가 되라는 가르침보다 집 잘 살고 때 묻지 않은 좋은 친구만 가려서 만나라는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받았을 것이며, 대학 가면 데모 같은 것 하는 데 근처도 가지 말라는 부모님 말씀을 철석같이 믿고, 실천하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가 된 그는 자식들에게 임대 아파트 같은 데 사는 수준 낮은 아이들과는 어울리지도 말라며 근엄한 표정을 짓고, 후하게 용돈을 건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극 중 정부와 방송이 좀비로 변한 시민들을 폭도로 몰 듯, 용석 또한 구별 짓기에 능하고 자신이 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남이야 죽건 말건, 나만 살면 되니까. 내가 11등 하고 남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정의라고 믿고 살아왔으니까. 내가 속한 그룹이 아닌 자들은 종북, 빨갱이, 패배자들이므로 생존 칸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쇠사슬로 막아 놓으면 되니까 말입니다.

 

부산행KTX는 한국 사회와 같습니다. 각자 열차를 탄 목적은 다르지만 같이 목적지를 향해 가야 하는. 그러나 위기가 터졌을 때 이기적인 행동과 수상한 구별 짓기는 그 공동체를 공멸하게 만듭니다. 임대 아파트와 고급 아파트를 구분 짓고, 인 서울과 지잡대(지방대를 낮게 칭하는 은어)를 자연스럽게 구별 짓게 만드는 현재의 사회 행태는 과연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가 어디를 향하게 만들까요. 이기적인 행동으로 생존자 전체를 위기로 몰고 간 용석은 그저 영화 속 캐릭터에 불과한 것일까요.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그저 이 사회의 리더들과 꼰대들만의 잘못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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